역사적 사건이 펼쳐지는 순간, 그 장소에서 직접 그 사건을 경험하는 것만큼 운이 좋은 경우도 없을 것이다. 지난 11월 4일 미국의 44대 대통령이 선출되는 것을 보는 순간,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들은 중요한 ‘역사적인 순간’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사실 ‘역사적’이라는 수식어는 말 그대로 역사가 지나 봐야 붙일 수 있는 것인 만큼,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역사성을 느낄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순간, 닉슨이 마오쩌둥을 만나 악수를 하던 순간, 마틴 루터 킹이 워싱턴에서 노예 해방 100주년을 맞아 평화 행진 연설을 하던 순간, 뉴욕 무역 센터 빌딩에 두 대의 여객기가 충돌하는 것을 TV화면을 통해 보면서도 도저히 믿기 힘들었던 순간, 그리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 선출이 현실화되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역사성을 느끼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은 일인 것 같다.
이처럼 누구나 쉽게 인지할 수 있는 할 수 있는 변환의 순간 이외에도, 역사 속에는 일반인들은 감지하기 힘든 ‘보이지 않는’ 역사적 순간들 역시 존재한다. 예를 들어 빌 게이츠가 동네 프로그래머에게서 OS프로그램을 5만불에 사서 MS-DOS라 이름 붙여 IBM에 팔았을 때, 또 넷스케이프가 ‘웹 브라우저’라는 것을 세계 최초로 상업용으로 출시했을 때, 그것이 인류의 미래에 얼마나 어마어마한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예측할 수 있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 열거한 예들은 모두 정보기술 혁명(IT revolution)과 관련된 것인데, 사실 오바마의 대통령 선출이라는 표면적인 정치적 역사성 밑에는, 어쩌면 우리가 쉽게 감지하지 못할 더 큰 거대한 변환의 조류가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중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환경기술 혁명(ET revolution)이다.
오바마가 멕케인-페일린 공화당 후보와 대립되는 각을 세웠던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가 바로 환경 문제이다. 대통령 당선인이 환경 보호라는 순수한 목적 자체를 위해 환경 친화 정책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그가 마주치게 되는 수만 가지의 문제들과 환경 문제가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처럼 얽히고 설켜 있기 때문에 환경 정책은 다른 산적해 있는 문제들과 결국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경제 위기로 인한 기업들의 도산, 특히 미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는 오바마로 하여금 제너럴 모터스 등에 특별 보조금을 지원해서 기업들이 보다 친환경적이고 연료 효율적인 자동차들을 생산하도록, 즉 더욱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하도록 하는 것을 지원하고 있고 이는 궁극적으로 친환경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중동에 대한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것 또한 미국의 외교 정책, 경제 정책 등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에 미국은 자원 독립(energy independence)을 추구, 그 결과 하이테크 환경 산업에 보다 많은 자본과 인력이 쏟아지게 된다. 특히나 지구 온난화 문제를 점차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미국의 공공담론들과 결부되어 국내 석유 매장량에 의존하기보다는 (‘drill, baby, drill!’) 새로운 green technology로의 총체적인 전환을 (‘invent, baby, invent!’) 모색하게끔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ET 혁명이 불어 닥쳤을 때 그것이 어떻게 IT 혁명에 버금갈 만한 영향을 인류 사회에 가져다 줄 것인가에 대해 여기서 자세히 설명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예측에 기대본다면(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겠지만), 수소 에너지가 광범위하게 상용화된다고 할 때 보스턴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표의 값이 지금보다 얼마나 싸질지 충분히 기대해 볼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오바마의 당선은 그것이 가지는 표면적인 정치적 역사성 외에도, 새로운 에너지원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회 혹은 새로운 문명으로의 거대한 변환의 본격적인 첫 걸음으로서 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가 당선되던 순간 터져 나왔던 수많은 흑인들의 (미국의 흑인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인들을 포함한) 기쁨의 함성과 눈물도 스펙터클한 것이었지만, 이것이 100년 이후의 세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거대한 변환의 시초(‘Change’!)가 될 수도 있음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넷스케이프가 출시했던 브라우저가 가져온 파급 효과를 생각해 보라. 시작은 미미하였지만 그 끝은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결정하였다.
칼럼니스트 임동균
